소망이 자면서 듣기 좋은 성경이야기

천지창조 — 빛이 있으라

창세기 1-2장 · 창세기 이야기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창세기 1:27

이야기 요약

천지창조 — 빛이 있으라

태초에,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의 그 순간을 상상해 보세요.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늘도 없었고, 땅도 없었어요.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였죠. 성경은 그 상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요. 적막함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무(無)의 상태. 그 고요함 속에,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감돌고 계셨습니다. 마치 어미 새가 알을 품듯,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그 숨막히는 순간이었어요.

천지창조 — 빛이 있으라

그런데 그 무한한 고요함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어둠의 수면 위를 감돌았다고 했죠. 원어로 보면 이 '감돌다'는 표현이 참 흥미로워요. 독수리가 둥지 위를 선회하듯, 혹은 어미가 아이를 품기 직전의 그 찰나처럼, 무언가를 향한 깊은 의지와 사랑이 담긴 움직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텅 빈 어둠을 그대로 두실 수 없었어요. 창조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움도 아니었고요. 그것은 순전한 사랑에서 비롯된 결단이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그 깊고 풍성한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어요.

천지창조 — 빛이 있으라

그리고 마침내, 그 말씀이 선포됩니다. '빛이 있으라.' 단 세 글자입니다. 길지 않아요.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짧은 한 마디가 온 우주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죠.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빛이 있었습니다. 존재하지 않던 것이 존재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무 재료도 없었습니다. 설계도도 없었어요. 그저 말씀, 그것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창조의 방식입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만들 때는 반드시 재료가 필요하죠.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셨어요. 그분의 말씀 자체가 곧 능력이었고, 그 능력이 세상을 불러냈습니다.

천지창조 — 빛이 있으라

첫째 날 빛이 생겨났고, 하나님은 그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둘째 날에는 하늘이 펼쳐졌어요. 셋째 날에는 육지와 바다가 구분되고, 온갖 풀과 나무가 돋아났습니다.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하늘에 박혔고, 다섯째 날에는 물고기와 새들이 온 세상을 가득 채웠죠. 창조는 하루아침에 완성된 게 아니었어요. 날마다 한 단계씩, 하나님은 혼돈을 질서로 바꾸어 가셨습니다. 텅 빈 공간을 채우시고, 형태 없는 것에 형태를 부여하셨어요. 그 과정이 얼마나 세심하고 정교했는지, 창세기는 하루하루의 이야기를 마치 장인이 작품을 다듬듯 천천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지창조 — 빛이 있으라

그리고 여섯째 날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셨어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우리'라는 표현, 참 인상 깊지 않으세요? 마치 깊은 의논이라도 하신 것처럼, 특별한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어요. 그런 다음,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모든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사람만이 하나님의 숨결을 직접 받았습니다. 사람은 그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존재, 그분과 직접 관계를 맺도록 부름 받은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천지창조 — 빛이 있으라

아담이 눈을 떴습니다. 처음 본 것은 빛이었을 거예요. 그 다음에는 하늘, 그리고 나무들, 그리고 그 모든 것 너머에 계신 분의 얼굴. 하나님은 그를 에덴 동산으로 이끄셨어요. 온갖 아름다운 나무들, 먹음직스러운 열매들, 강물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 동산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붙이라고 하셨어요. 모든 동물들이 아담 앞으로 나왔고, 아담은 하나씩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권한 일부를 사람에게 나눠 주신 거예요. 하지만 아담에게는 아직 한 가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그래서 하와가 창조되었습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그것이 하나님이 설계하신 인간의 모습이었어요.

천지창조 — 빛이 있으라

일곱째 날이 밝아왔습니다.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셨어요. 그리고 쉬셨습니다. 그런데 이 '쉬심'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의 창조가 완성된 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빛과 어둠, 바다와 육지, 해와 달, 풀과 나무, 짐승과 새, 그리고 사람. 그분의 눈에 그것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어요.' 후회가 없으셨습니다. 미완성도 없었어요. 그것은 완전한 사랑으로 빚어진, 완전한 작품이었습니다.

천지창조 — 빛이 있으라

창조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단지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냐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흙을 빚으시고,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만드신 존재예요. 당신의 형상을 담아 만드신 존재입니다. 그 어떤 피조물도 받지 못한 방식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죠.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 내신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무질서해 보이는 우리의 날들 위에서도, 그분의 영은 여전히 감돌고 있어요.

묵상

창세기 1장과 2장은 과학 교과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왜 존재하는지,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아무런 강요도 받지 않으셨어요. 부족한 것이 있으셔서 채우려 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분은 순전히 넘치는 사랑으로, 기쁨으로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의 가장 마지막, 가장 소중한 자리에 우리 인간을 놓으셨어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존재. 그것이 우리입니다. 살면서 때로 스스로가 너무 작게 느껴질 때가 있죠.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말합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존재라고요. 하나님이 직접 숨을 불어넣으신, 그분의 형상을 담은 존재라고요. 오늘 우리의 삶 어딘가에 혼돈이 있다면, 그 위에 하나님의 영이 감돌고 있음을 기억하세요. 그분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을 때 어둠이 물러갔듯, 우리의 어둠 위에서도 그분은 여전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도

창조주 하나님,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빛을 말씀하신 하나님. 오늘 저의 삶 속에 있는 혼돈과 어둠 위에도 말씀해 주세요. 제가 당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귀한 존재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하루하루를 의미와 감사함으로 살아가게 이끌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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