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면서 듣기 좋은 성경이야기
창세기 2-3장 · 창세기 이야기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창세기 3:21
에덴동산. 그 이름 자체가 이미 '기쁨'을 뜻하죠. 동쪽에 펼쳐진 이 동산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마다 과실이 풍성하게 달려 있었어요. 강이 흘렀고, 짐승들이 평화롭게 거닐었습니다. 아담은 그 한가운데서 살았어요. 그는 동산을 돌보고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그의 일이었거든요. 하나님은 그를 그냥 무기력하게 두지 않으셨어요. 맡겨진 것이 있었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새들의 이름을, 들짐승들의 이름을, 아담이 하나씩 불러주었어요. 그 이름 하나하나가 그대로 정해졌습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모자라지 않은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한 가지가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 그게 좋지 않으셨던 거예요. 하나님은 아담을 아주 깊은 잠에 들게 하신 뒤,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눈을 떴을 때, 그 앞에 하와가 있었어요. 아담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 들어보셨나요?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게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시입니다. 감탄이었어요. 경이였습니다. 두 사람은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앞에서 감출 것이 없었고, 감출 필요도 없었어요. 그런 관계, 그런 하루하루가 얼마나 계속됐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뱀이 등장합니다. 뱀은 들짐승 중에서 가장 간교한 존재였어요. 하와에게 다가온 뱀이 한 마디를 건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날카로운 질문이었어요. 사실을 살짝 비틀어 놓은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게 아니었거든요. 단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 먹지 말라 하셨죠. 그런데 뱀의 말 앞에서 하와는 그것을 교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답했어요. 하나님이 하신 말씀보다 조금 더 얹어진 말이었습니다. 작은 변형이었지만, 그게 시작이었어요.
뱀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했죠. 하와가 나무를 바라봤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어요. 그 세 가지 눈길이 창세기 본문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아담은 어디 있었을까요? 성경 본문은 놀라운 한 마디를 끼워 넣어요.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아담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함께 있었던 거예요. 뱀이 하와에게 말하는 동안, 아담은 곁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와가 열매를 건네자, 받아 먹었어요.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밝아짐이 기쁨이 아니었어요. 처음으로 자신들이 벗은 몸임을 알아챘고, 무화과 잎을 엮어 앞을 가렸습니다. 조금 전까지 부끄러움이란 걸 몰랐던 두 사람이, 이제는 서로의 눈길조차 피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저녁 무렵,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전이라면 그 소리가 반가웠겠죠. 하지만 이제는 달랐어요. 두 사람은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어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것은 모르셔서 하신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으셨던 거예요.
아담이 대답했어요.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이 물으셨습니다. '네가 벗었음을 누가 네게 알렸느냐? 내가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그러자 아담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의 고백 속에 하와가 있었고, 하와가 있는 자리에 하나님이 있었어요. 하나님을 향한 미묘한 책임 전가였습니다. 하와도 마찬가지였어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두 사람 모두 책임을 다른 곳으로 넘겼습니다. 처음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두려움과 변명이 자리를 잡는 순간이었어요.
하나님은 뱀을 저주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와에게는 출산의 고통을, 아담에게는 땅의 고난을 말씀하셨어요.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이 말씀은 단순한 벌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선택한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신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 모든 선고가 끝난 뒤, 하나님이 한 가지를 더 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 옷을 만들어 입히셨어요. 내쫓는 자리에서, 입혀주셨습니다.
에덴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 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을 떠났습니다. 완벽했던 자리를 잃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의 이야기를 창세기는 끝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등장해요. 아담은 하와의 이름을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절망이 아니라, 생명을 향한 이름이었어요. 두 사람은 땅에서 살아갔고, 자녀를 낳았고,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한 번의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었지만, 그게 이야기의 끝은 아니었어요. 그 선택 이후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놓지 않으셨거든요. 가죽 옷을 입혀주신 그 손이, 그들을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오래전 어딘가에서 일어난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안에서도 반복되고 있어요. 우리는 늘 선택 앞에 섭니다. 크고 작은 선택들,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순간들, 그리고 그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들. 아담은 하와 곁에 서 있었어요. 뱀이 말을 걸 때, 그는 침묵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걸, 이 이야기는 말하고 있어요. 퇴직 후 자꾸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고 하셨죠? 그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동산을 떠나는 그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님은 가죽 옷을 입혀주셨어요. 그게 이 이야기가 진짜 하고 싶은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든, 하나님은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 수치를 가려주시고, 길을 같이 걸어가 주신다는 것.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 무게를 혼자 다 지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 우리도 아담과 하와처럼 선택 앞에 서고, 그 선택 앞에 무너지는 존재입니다. 숨고 싶을 때가 있고,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며 찾아오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수치를 덮어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은혜 안에 머물게 해 주세요. 아멘.